경상감영 조선 전기 경상도는 행정 군사적 필요에 따라 좌도와 우도로 빈번히 분할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경상감영은 조선 개국 때는 경주에 있었으나 그 후 상주와 경주로 나뉘고 합치기를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이후인 1601년(선조 34)부터는 경상감영이 대구에 정착하여 1895년(고종 32) 8도가 23부로 개편될 때까지 존속하였습니다.
경상감영은 대구읍성의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 서북쪽의 대구부 관아와 이웃하고 있었는데, 대구부에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적으로 객사의 전패 앞에서 국왕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과 그 밖에 객사인 달성관(達城館)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의식은 부사를 겸한 경상감사가 주관하였습니다.
대구에 경상감영을 두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구가 전략 요충지로 부각되었으며, 경상도의 한가운데에 있어 물산의 결집과 이동이 쉽고, 조정의 지시를 쉽게 내릴 수 있었으며, 군사나 지방 관리들의 감독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편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경상감영은 1807년 관찰사 겸 부사(府使)였던 윤광안이 지은 것으로, 대구 경상감영지(大邱慶尙監營址)는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20년 6월에는 경상감영의 정문과 부속 건물지 등을 발굴하고 조사하였습니다.

